간행물

생화학분자생물학회입니다.


Translational Research

폐동맥 고혈압의 조기진단을 위한 연구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자

    2016-08-01
  • 조회수

    385

폐동맥 고혈압의 조기진단을 위한 연구




박준빈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nanumy1@gmail.com






Nothing, they say is more certain than death, and nothing more uncertain than the time of dying” – Thomas Paine

 

죽음만큼 확실하게 정해진 일은 없으나, 죽을 때 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 토마스 페인

 

 

 

 

​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평소에 죽음을 준비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는 아마도, 누구도 자신이 죽을 시기를 미리 알지 못하며 죽음은 그저 먼 미래의 일로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병을 진단받는다는 것은 - 여전히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 죽음의 때가 가까워졌음을 갑작스레 알게 되는 과정이라 볼 수 있겠다. 의사로서 살다 보면, 많은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다가올 이별에 대해 슬퍼하고 앞으로의 남은 삶을 어떻게 함께할 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환자-질환이 아닌 환자-가족의 관계에 있어 의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질병의 종류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완치가 가능한 병의 경우에는, 의사가 환자의 완전한 회복에 기여함으로써 죽음의 시기를 다시 알 수 없는 상태까지 돌려 놓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많은 질환들이 아직까지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 경우 의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환자와 가족들이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더 길게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인턴이 끝나가던 겨울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전공의 시험을 준비하다 갑작스런 어머니 전화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갔던 기억이다. 그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평소 불편함이 없으셨고 담배를 즐기시며 지병으로 당뇨가 있어, 급성심근경색이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되었다. 나와 가족에게 힘든 시기였지만, 이 일이 순환기내과를 전공분야로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몇몇 병들은 환자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안녕을 고할 시간도, 가족들이 환자를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는 잔인함이 있었고, 나에게는 그런 환자와 가족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었다.


  바라던 순환기내과 전문의가 되어 다양한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나를 이 길로 이끌어주신 아버지께 감사 드리게 되었다. 순환기학은 기초연구에 있어 다른 의학분야와 달리 분자생물학뿐만 아니라 혈역학, 전기생리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영역을 다루고 있었으며, 임상진료에 있어서는 예방부터 영상학적 검사, 치료 시술에 이르기까지의 처음과 끝을 독자적으로 행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중 폐동맥 고혈압(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PAH)은 여러 심혈관계 질환 중에서도 사망률이 높은 편이며, 특히 급사의 위험이 높다는 특징이 있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폐동맥 고혈압은 30-50대의 여성들에게 주로 발생하여 사회적, 경제적인 손실이 매우 크며, 현재로선 완치가 불가능하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질병으로도 알려진 바 있다. 이러한 폐동맥 고혈압은 폐세동맥의 폐색성 병변을 특징으로 하며, 최근 여러 치료약제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초기 사망률이 아주 높은 실정이다. 예를 들어 특발성, 가족성, 식욕억제제 유발성 폐동맥 고혈압의 경우 1년 사망률이 9-14%에 이르며 (1), 더욱 예후가 나쁘다고 알려진 전신경화증 관련 폐동맥 고혈압의 경우에는 1년 사망률이 10-30%까지 보고되고 있다 (2). 이에 따라 여러 폐동맥 고혈압의 치료지침들에서,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의 예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질환의 조기진단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각심에도 불구하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폐동맥 고혈압의 조기진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2001-2009년 등록사업(Registry) 연구에 따르면, 특발성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약 85%는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단계인 뉴욕심장학회 기능성 분류 III-IV에서 병이 진단되었다 (3). 마찬가지로 프랑스 폐동맥 고혈압 네트워크의 보고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새롭게 진단된 전신경화증 관련 폐동맥 고혈압 환자의 79%는 이미 기능성 분류 III-IV로 진행된 상태였다 (4). 즉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한 증상이 발생하여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방문하게 되는 시점에서는, 이미 질병이 상당히 진행한 상태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  한편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한 증상은 애매하고 비특이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로와 운동 시 호흡곤란이 주요 증상이나, 천식이나 운동 부족으로 인한 증상과 유사하여 이러한 더 흔한 질병이나 상태부터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폐동맥 고혈압의 병발 위험이 높아 면밀하게 경과관찰을 해야 하는 질환인 전신경화증의 경우에도 동반된 근골격계 이상으로 인해 조기에 진단을 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환자가 처음 증상을 호소하는 시기로부터 폐동맥 고혈압의 확진을 위해 필수적인 시술인 우심도자술의 시행까지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호주에서 이루어진 한 연구에 따르면, 특발성 폐동맥 고혈압이 진단되기까지 약 47개월의 시간이 걸리며 그 동안 평균 5.3회의 일반의 진료와 평균 3.0회의 폐동맥 고혈압 전문가 진료를 받게 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5). 폐동맥 고혈압의 조기진단에 있어 또 하나의 커다란 장애물은 폐동맥 고혈압으로 인한 증상의 정도와 혈역학적 악화의 정도가 크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증상의 정도가 경미한 뉴욕심장학회 기능성 분류 II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분석을 하였을 때, 이들의 평균 폐동맥 저항은 약 10 Wood unit로 측정되었는데 이는 질병의 초기단계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수치이다 (6). 따라서 비록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이미 폐동맥의 폐색성 병변의 정도는 상당히 진행하였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폐동맥 고혈압을 이른 시기에 진단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치료가 시작되는 시기에 따라 환자의 예후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 폐동맥 고혈압 네트워크 자료에 의하면, 뉴욕심장학회 기능성 분류 I이나 II에서 진단되어 치료가 시작된 특발성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이 기능성 분류 III이나 IV에서 치료를 받은 경우보다 유의하게 좋은 생존율을 보였다 (1). 전신경화증 연관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영국 등록사업 연구에서도, 기능성 분류 I이나 II에서 치료가 시작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생존율이 2배나 양호하였다 (2). 하지만 이런 등록사업 연구들을 무작위배정 연구를 통해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곤란하다. 이에 따라 생물학적 타당성과 지금까지의 등록사업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증상이 경미한 폐동맥 고혈압 환자들을 조기에 발견하여 보다 이른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환자의 임상 예후를 개선시킬 수 있으리라는 주장들이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폐동맥 고혈압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검사기법은 없는 실정이다. 현재까지는 심장초음파가 폐동맥 고혈압의 진단을 위한 핵심적인 영상학적 검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심장초음파는 비침습적인 방법으로 폐동맥의 압력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폐동맥 고혈압을 진단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우심실의 크기와 기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심장초음파는 폐동맥의 저항을 직접 측정하는 것이 아니며 혈류를 비롯한 다른 요인들에 의해 폐동맥의 압력이 달라질 수 있어, 폐동맥 고혈압의 정확한 진단은 물론 치료 반응의 평가 및 추적 관찰에 한계가 있다. 또한 우심실의 확장이나 수축 기능의 저하는 폐동맥 고혈압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관찰되므로 질병의 조기진단 측면에서는 그 효용성이 더욱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우심도자술은 폐동맥 고혈압의 확진을 위해 필수적인 검사이나 침습적인 시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증상이 없거나 경미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차적인 검사로 시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다. 이에 폐동맥 고혈압을 보다 조기에 진단하고 진단의 정확성을 향상시키며 치료반응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질환의 병태생리에 기반한 새로운 검사기법의 개발이 필요하겠다.

 

  개인적으로 폐동맥 고혈압의 진단에 있어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을 이용한 분자영상기법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핵의학과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폐동맥 고혈압의 주요 병태생리 중 하나인 염증 세포의 폐동맥 침윤을 평가할 수 있는 영상기법을 개발하고, 그 유용성을 동물모델을 통해 평가하는 일련의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 연구 결과 비정상적인 염증과 면역 반응이 폐동맥 고혈압 발생의 핵심적인 병태생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지 폐동맥에 특이적인 염증 반응을 평가할 수 있는 혈액검사나 영상검사는 없었다. 지금 진행 중인 연구를 통해 분자영상기법이 염증세포의 폐동맥 침윤 여부 및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향후 추가적인 연구들을 바탕으로 폐동맥 고혈압의 조기진단에 활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또한 현재 폐동맥 고혈압의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희귀 질환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통계분석에 필요한 충분한 수의 환자를 등재하기가 어렵고, 치료제의 반응을 임상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경과를 관찰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분자영상기법으로 새로 개발된 치료제의 효과를 조기에 평가할 수 있다면, 임상 사건의 발생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보다 효율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최근 여러 제약회사들이 신약개발의 위험부담 증가로 인해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향후 혁신적인 폐동맥 고혈압의 치료법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1. Humbert, M., Sitbon, O., Chaouat, A., Bertocchi, M., Habib, G., Gressin, V., Yaici, A., Weitzenblum, E.,

   Cordier, J. F., Chabot, F., Dromer, C., Pison, C., Reynaud-Gaubert, M., Haloun, A., Laurent, M., Hachulla, E.,

   Cottin, V., Degano, B., Jais, X., Montani, D., Souza, R. and Simonneau, G. (2010) Survival in patients with

   idiopathic, familial, and anorexigen-associated 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in the modern management era.

     Circulation. 122, 156-163.

2. Condliffe, R., Kiely, D. G., Peacock, A. J., Corris, P. A., Gibbs, J. S., Vrapi, F., Das, C., Elliot, C. A.,

   Johnson, M., DeSoyza, J., Torpy, C., Goldsmith, K., Hodgkins, D., Hughes, R. J., Pepke-Zaba, J. and Coghlan, J. G.

   (2009) Connective tissue disease-associated 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in the modern treatment era.

   Am J Respir Crit Care Med. 179, 151-157.

3. Ling, Y., Johnson, M. K., Kiely, D. G., Condliffe, R., Elliot, C. A., Gibbs, J. S., Howard, L. S., Pepke-Zaba, J.,

   Sheares, K. K., Corris, P. A., Fisher, A. J., Lordan, J. L., Gaine, S., Coghlan, J. G., Wort, S. J.,

   Gatzoulis, M. A. and Peacock, A. J. (2012) Changing demographics, epidemiology, and survival of incident 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results from the pulmonary hypertension registry of the United Kingdom and Ireland.

   Am J Respir Crit Care Med. 186, 790-796.

4. Launay, D., Sitbon, O., Hachulla, E., Mouthon, L., Gressin, V., Rottat, L., Clerson, P., Cordier, J. F.,

   Simonneau, G. and Humbert, M. (2013) Survival in systemic sclerosis-associated 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in

   the modern management era. Ann Rheum Dis. 72, 1940-1946.

5. Strange, G., Gabbay, E., Kermeen, F., Williams, T., Carrington, M., Stewart, S. and Keogh, A. (2013) Time from

   symptoms to definitive diagnosis of idiopathic 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The delay study.

   Pulm Circ. 3, 89-94.

6. Galie, N., Rubin, Lj, Hoeper, M., Jansa, P., Al-Hiti, H., Meyer, G., Chiossi, E., Kusic-Pajic, A. and

   Simonneau, G. (2008) Treatment of patients with mildly symptomatic pulmonary arterial hypertension with bosentan

   (EARLY study): a double-blind, randomised controlled trial. Lancet. 371, 2093-2100. 


 

첨부파일